[대인관계 고민해결]상처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


Universe

with ID Independent


"상처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

*상담 사례를 각색하여 만든 이야기입니다.

1. 짜증


요즘 나는 딱 해야 할 만큼의 일만 한다. 업무 속도도 빨라서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는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그 시간에 딴 짓을 하기 쉽다. 아침에 일을 빠르게 끝내 놓고 나서 오후엔 미팅이 없으면 점심을 먹으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점심을 먹으며 보기 위해 틀어 놓은 영화가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업무시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은 다 끝났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은 나른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한다. 

내가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동안 팀원들은 팀챗에서 많은 메세지들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그 메세지 알림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의 나른하고 편안한 감정을 방해했다. 쌓여가는 메세지 알람은 '우린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는 왜 그러고 있어?'라며 나를 비판하는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을 넘어서까지도 자신의 일을 더 잘해내고 싶은 그들의 마음은 이어졌다. 

 

그런데 그들의 메세지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왜 눈치 보게 업무시간 넘어서까지 메세지를 주고 받는거야" 

하고 기분 나쁜 말이 튀어 나왔다. 짜증이 났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뭔가 불편했다. 죄책감..? 뭔지 모를 찝찝함이 끈적한 기름처럼 나에게 눌어붙었다. 

이런 상태는 몇 일 동안 지속 되었다. 

아침은 피곤했고 업무 속도는 느려졌다. 나른하고 편안하게 보내던 오후 시간은 동료들의 메세지로 짜증과 예민함이 함께 했다. 업무시간이 끝나도 나의 고민은 계속 되었다. 무엇인가 놓친 것처럼 불안했고 불편했으며 상시 화가 나있었다. 그리곤 팀원들에게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메세지를 주고 받거나 통화를 할 때 이전과 다르게 냉대하거나,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데 따지기도 했다. 뭔가 심술 난 사람처럼 사람들을 대했다. 

그렇게 업무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동료들에게 했던 언행들이 떠올랐다. 동료들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에 후회하다가 그들의 행동에 화내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무기력해졌다.

심장은 초조한 듯 쿵쿵 뛰었지만 몸엔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2.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이 무기력에 지고 싶지 않았다. 삶의 방향을 잃고, 움직이지 않는 내가 싫었다. 무기력을 넘어서기 위해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고 있지 않고 있었던 목록들을 적어내려 갔다. 책을 몇 개 선택했고, 해볼 만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았다. 그렇게 적은 목록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나니 무기력했던 마음이 한 층 가벼워졌다. 이것을 진행하기 시작하면 무기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무기력 집어던지기"를 시작했다. 

시작한 첫 날,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먹고 계획들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지워지는 목록들을 보고 있으니 뿌듯했다. 중간 중간 업무 톡이 울려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나의 할 일에 집중했다. 

2일

3일

4일이 지나가도 똑같이 뿌듯했다. 

'아 목표가 없었으니 무기력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전의 나는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고 여기며 뿌듯함을 만끽했다.



3. 반복되는 짜증과 진실


그렇게 5일? 6일? 쯤 지났을 때였다. 업무시간 팀챗에 "이번 일 진짜 힘들었을텐데 고생 많았어요. 정말 ㅠㅠ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올라왔다. 팀장님이 다른 동료에게 보낸 메세지였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말 어떠한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인상이 써졌다. 그리곤 "고생 많으셨어요!!!"의 내용에 메세지가 연이어 올라왔다. 나도 똑같은 메세지를 한 줄 보탰다. "고생하셨어요." 

업무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는데 또 심장이 쿵쾅쿵쾅대기 시작했다. 뭔가 불편했다. 밥먹는 내내 메세지가 떠올랐다. 그 메세지에 찌푸려진 미간으로 나의 질투를 대변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내가 왜 질투를 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무기력 집어던지기’ 프로젝트도 나의 짜증과 무기력을 날려주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지.. 나의 고민은 점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점점 무기력하고 짜증이 가득 찬 날들이 이어지자,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보 혹시 무슨 일 있어? 요즘 뭔가 힘들어보이네?” 

 

“아니야..”

 

“왜~ 무슨일이야 이야기해봐.”

 

나는 자존심이 상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짜증이 나있고 무기력한 모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같이 살고 있는 남편에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 기분에 맞추라는 표현으로 보일까봐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털어놓았다. 그 얘길 듣던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자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미 동료들한테 기분이 상했던 것 같은데?”

 

당황스런 질문에 

“에? 내가! 왜” 라고 답했다. 그런데 불현듯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전까지 우리 팀은 5명의 팀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때 당시 팀장님을 제외하고 나는 가장 높은 연차에 있었다. 어느 날 팀장님이 곧 조직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팀에게 공유해주었다. 팀장님은 더 큰 단위의 옮겨간다는 소식과 곧 1:1 면담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조조정도 아니고 이따금씩 있던 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나도 모르게 묘한 기대심을 가졌던 것 같다. 팀장님이 더 큰 부서로 이동하고 나는 가장 높은 연차에 이전까지 일도 잘해왔으니 팀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이었다. 몇 주가 흘렀고 부서개편의 방향이 정해졌다. 나를 제외한 팀원 모두가 이직하거나 타부서로 배치되며 타부서에서 팀장, 팀원 두 사람이 넘어오고 한 사람을 새로 채용한다는 방향이었다. 이 내용을 보자마자 순간 ‘하아’ 탄식이 흘러나오며 많은 감정들이 스쳐갔다. 팀장이 되지 못했고,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떠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서운함, 슬픔, 짜증, 배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어린애처럼 티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무덤덤하게 해야 할 일을 해냈다. 그렇게 팀원들이 퇴사를 하고 부서가 이동되며 팀이 다시 편성되었다. 

새로운 팀장님은 이전과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존의 팀과 업무에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니 본 부서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연차로 이들을 팀장님과 함께 리드해야하는 책임감도 가졌다.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우리의 방향을 정리하기 위해 팀 워크숍을 준비했다. 

오전 워크숍 장소로 출발하여 맛있게 점심을 먹고 수다를 피웠다. 타부서에서 넘어온 팀장님과 두 사람은 이전에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함께 나누기도 하였다. 묘한 결속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전체 회의를 시작했고 특정 아젠다에 대해 과거의 업무 경험을 담아 몇 가지를 제안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나의 제안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팀장님은 다른 방향의 이야기로 회의를 이끌어갔다. 그간의 나의 경험이 무시되는 것 같았지만 ‘팀장님의 의견이니..‘ 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팀장님이 나를 배제하고 팀을 주도하려고 한다.’는 의심이 나도 모르게 나를 조금씩 조금씩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더 빠르게 움직였고 더 많이 움직였으며 나의 주장을 보다 더 강하게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료들과의 갈등도 커져갔다. 동료와 의견이 다를 때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면 나의 주도성을 잃고 그들을 따라가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팀에서 나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아 다소 공격적으로 나의 주장을 표현했고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자 내가 없을 때와 있을 때에 팀의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괜히 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만드는 사람 같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갈등이 싫어 나의 표현을 점점 줄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주도성을 잃어갔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는 나에게 솔직해졌다. 

 

나는 지금의 나의 일을 좋아하고 있으며 일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해왔다. 괜찮은 결과들도 조금씩 쌓이며 나의 이력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함께하던 팀원은 모두 교체되었고, 기대했던 팀장은 되지 못했으며, 팀에서 가장 높은 연차를 가진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실

 

‘나는 팀에게 삐졌던 것이다.’ 

 

맞다. 

 

나는 삐졌다. 기분이 상했다. 아닌 척, 강한 척 했지만 상처를 받았다. 팀원의 교체로 마음 맞는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상실감을 느꼈고 고연차에도 팀장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조직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지만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며 두고 보라는 마음으로 나를 밀어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옹졸하다. 이런 걸로 혼자 삐져서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하고 있었으니 너무 옹졸하고 쪼잔해 보였다. 또 다시 화가 났다. 

 

그런데 이 이야길 듣던 남편이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어우 그동안 얼마나 속 앓이를 했겠어.“ ”답답하고, 짜증나고, 서운하고..“

“그래도 자긴 참 강한 사람이야. 이런 걸 참으며 온 걸 보면”

“내가 다 슬프네..”

남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의 눈물에 남편은 살짝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짜증과 슬픔이 섞인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몇 분을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다시 정리하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현재의 일에서 다시 주도성을 찾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갖고 있는 팀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가장 필요했고 지금까지 느꼈던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팀장님과 이야길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4. '나'


몇 일 뒤에 팀원 교체에 대한 서운함과 팀으로부터 배제되는 느낌을 받았던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팀장님에게 공유했다. 나의 이야기에 팀장님은 충분히 공감해주었고 나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사실 팀장님은 상위 부서로부터 팀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전달받아 과거의 진행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업무를 전개했고 그 과정에서 팀원에게 다소 공격적인 나의 태도가 리딩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여 걱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서로의 오해가 그렇게 풀려나갔고 팀장님은 고연차의 선배로서 도와주었음 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렇게 팀장님과 팀의 목적을 잘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더욱 편안해지고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딱 해야할 만큼의 일만하지 않는다. 우리 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해야할 일들을 찾아 제안하고 동료들과 소통해나가며 최적의 방향으로 빠르게 업무를 처리해나가며 성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팀장님과 동료들에게도 큰 인정을 받는다. 이런 시간 끝에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의 상처를 무시하고 강인하게 밀고 나가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처를 위로하고 동료들과 소통해가며 건강한 에너지로 팀에 필요한 리더십과 주도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